바람과 푸른 초원의 나라, 몽골여행기

반복되는 일상에서 힘겨워질 때면 상상하곤 했다.

몽골의 푸른 초원을 말을 타고 달린다.

밤하늘에 쏟아질 듯 가득한 별에 가슴을 활짝 연다.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몽골다움을 만끽하면서,

그냥 자연에 모든 걸 맡겨버리고,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광고 카피를 실천하고 싶다고....

7월 16일(목), 우리 장군산악회에서 네 번째 해외여행에 나선 날이다.

아침 8시 종합운동장 육각정(팔각정 아님!)에서 출발한 우리 회원 6명은

12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산님 부부, 그리고 새롭게 여행에 합류하게 된 인천 오름 부부까지, 모두 10명이 모였다.

제이에스투어 강종숙 대표가 출국 수속을 맡아주고

여행지에서 함께 마시라고 발렌타인 양주까지 선물로 챙겨주었다.  

오후 2시 20분에 출발한 비행기가 세 시간 반 만에 울란바타르공항에 도착하였다.

울란바타르 공항은 규모나 시설이 우리 중소도시 버스종합터미널처럼 소박하다.

몽골인 현지 가이드를 만나 오른 중형버스는 한국에서 건너간 중고 버스다.

그러고 보니 눈에 띄는 시내버스나 승합차들 대부분이 한국 중고차다.

‘00어학원’, ‘00회사’ 등의 한글을 버젓이 그냥 달고 있는 차들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공항을 나서니 하늘은 흐렸지만 온몸이 시원해지는 듯한 공기의 느낌부터 달랐다.

노면이 고르지 않은 2차선 포장도로를 달리며 시내로 들어가는데

주변 구릉에서 방목하는 가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멀리 구릉에는 판잣집들과 게르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일종의 달동네인데, 유목을 포기하고 도시로 들어와 팍팍하게 사는

그들의 신산한 삶의 모습이 느껴지는 것 같다.

겨울이 혹독한 몽골에서 그들은 움막에 석탄을 태우는데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이라고 가이드는 이야기한다.

한국인이 주인이라는 선진그랜드호텔은 새로 지은 호텔답게

내부시설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여장을 푼 우리 일행은 호텔방에 모여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로

여행의 시작을 자축하였다.

두 번째 날, 체첸궁 트레킹을 하는 날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서야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체첸궁산으로 알고 있었던 산의 이름은 몽골의 마지막 왕인 복특칸의

이름을 딴 복특칸산이고 정상의 이름이 체첸궁이란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9시에 출발한 우리는

약 10시쯤 산행의 출발지인 만치르에서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하늘은 흐리고 간혹 가는 비가 내렸지만

산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복특칸산은 해발 2,265미터에 이르는 몽골의 4대 성산의 하나지만

출발지점이 대략 해발 1,700미터 가량이어서 힘든 코스는 아니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숲길에는 히말라야 삼나무, 시베리아 전나무, 소나무 등이

울창하게 들어섰다.

부드러운 흙길은 걷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청량한 공기는 폐 속 깊이까지 정화되는 느낌이다.

계곡을 흐르는 물에 손을 담가 본다. 시리도록 차다.

마음의 때가 다 씻겨 나가는 듯하다.

해발 2,000미터가 넘어서면서부터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면 초원은 온통 야생화다.

끝없이 이어진 야생화 숲은 야생화를 피해 발을 디뎌도

결국은 밟을 수밖에 없을 만큼 지천으로 피어있다.

모두들 꽃에 묻혀 사진을 찍고,

하나라도 더 야생화를 사진에 담아가려고 카메라 렌즈를 꽃에 댈 듯 다가선다.

모두들 꽃에 취한 것인지 얼굴이 불콰하다.

그 어느 모임보다 감성이 풍부한 우리 회원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화려한 감탄사를 터뜨리며,

이곳저곳에서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런 것이리라.

작은 것들, 그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모여

한 세상을 이룬다.

우리는 그저 겉으로 드러난 큰 덩이만 보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지만,

얼마나 많은 사소한 사람들이 모여 한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야생화들도 그렇다.

야생화들은 대개 하나만 보면 특별히 예쁠 것도,

유난히 도드라지지도 않는다.

그저 수수하고 밋밋한 맛이 야생화에 담겨 있다.

그런데 그 야생화들이 모여 이루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을 가득 덮는 야생화들이야말로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

수수한 것들의 곱디고운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야생화에 마음이 끌리는 지도 모른다.

긴 겨울과 짧은 봄을 지나며 생명의 숨결을 길러 올린 야생화들이,

순식간에 지나갈 여름날의 소중한 하루하루를 꽃 피우고 씨 날려,

다음해의 생명을 준비하는 모습은 여리면서 장엄하기까지 하다.

저 노란 꽃들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묻지 않는다.

얼마나 살았는지도

형체도 슬픔도 없다.

때가 되면 산 것들은 바람 속으로 돌아간다.

무심히

풀씨가 날아와 또 다른 꽃을 터트리는 그 첫 자리

한낮의 초원이 뜨거운 숨을 들어올려

갓난 구름송이 하나 피워낸다.

몽골초원에서 4(박영근 시)

세 시간 반 정도의 트레킹 끝에 정상인 체첸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몽골의 자연신앙의 한 형태인 어워가 있었다.

어워는 일종의 돌무지인데 우리나라의 서낭당과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정상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천문대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오늘 트레킹은 모두 17km의 거리를 대략 6시간쯤 걸려서 마쳤다.

체첸궁에서 하산한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이동하였다.

테를지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선정된 곳으로

몽골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해발 1,700미터의 산봉우리들이 연이어 있고,

아래로는 톨강이 흘러 산림이 조성된 아름다운 지역이다.

우리 말로 ‘쌍바위’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단지에 있는

게르에서 숙박하였다.

게르는 4인용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일인용 침대 4개가 가장자리에

둘러 놓여있고 가운데 장작으로 불 지피는 난로가 놓여있다.

우산살 같은 구조로 지붕을 만들어 놓고, 마치 자바라 같이 접었다 폈다 하는

나무살을 빙둘러 벽을 만들었다.

게르를 설치하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리고, 접는데는 20분이면 된다고 한다.

저녁 식사로는 몽골의 전통요리인 허르헉을 먹었다.

감자와 당근, 양고기를 미리 뜨겁게 달군 돌과 함께 푹 익힌 허르헉은

생각보다 냄새도 없고 먹을 만 하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비행기 안에서 사온 보드카 한 병으론 부족해서

보드카 한 병을 더 주문해서 마셨다.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아 다시 게르에 모여 4홉 소주를 4병이나

더 마셨으니 취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겠지.

이날 밤 술에 취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신만이 아시리라.(ㅋㅋ)

셋째 날 엉거츠산을 트레킹하는 날이다.

지난 밤의 엄청난 과음 덕분에 눈이 잘 떠지지 않아서 걱정했지만,

몽골의 맑고 청정한 공기 때문인지 전혀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출발한 엉거츠산 트레킹은

처음부터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이다.

숙취 때문에 숨이 가쁘고, 땀이 흐르지만

뒤돌아 내려다보는 전망이 기가 막히다.

빼어난 자연 앞에 서면 우리의 표현력은 얼마나 궁한가?

“그림 같다”는 말은 자연에 대한 모독이다.

‘스스로 그럴듯한[自然]’ 자연이 거기 있을 뿐이다.

빛나는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초원.

파랑과 초록이 조화롭게 배치된 공간 속에서

온갖 형상의 거대한 바위산들이 위용을 자랑하며 늘어서 있고,

느릿느릿 양 떼들과 소 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풍경이다.

나는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며 홀린 듯 경치를 바라보았다.

그 경치는 내게, 바쁘게 살지 않아도

생은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아옹다옹 살아온 삶이 다 하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득한 기분이 되어 멍하니 서 있었다.

마음이 텅 비어 버린 것 같다.

푸른 초원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산 주름은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그 평원에는 온통 야생화가 피어 있다.

흰 패랭이, 붉은 패랭이, 오이풀, 에델바이스 등이 서로 섞여

바람에 몸을 눕히고 있다.

그리고 온통 시린 초원의 산 주름에 때때로 포즈처럼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야생화가 하도 많아 귀해 보이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너무 귀한 꽃이라 꺾고 싶어서였는지,

한 묶음의 꽃다발을 들고 저마다 포즈를 취한다.

마치 부케를 던지듯이 꽃다발을 던지며 깔깔거리는

우리 회원들이 십대 소녀로 돌아간 것 같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천둥소리 요란하게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일정을 조금 바꿔 거북바위를 먼저 가서 보고

간단한 기념품 가게에서 기념품들을 몇 가지 샀다.

이어 몽골에 오면 꼭 해보고 싶었던 말타기 체험을 하기로 하였다.

전 세계를 평정했던 몽골 제국의 영광에는 말이 함께 있었다.

바람을 가르며 초원을 내달리는 기쁨을 누리고,

기마민족의 기상을 만끽하고자 하는 설렘으로 말에 올랐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말타는 사람들이 초보라는 점도 있지만, 주로 승마체험에 쓰이는 말들은

노쇠해서 웬만하면 달리기를 꺼린다고 한다.

게다가 승마 가이드가 두 필의 말고삐를 쥐고 앞에서 끄는 대로 만 움직이니

영 신이 나지 않았다.

일정에는 두 시간 체험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한 시간도 못되어 끝나니

허탈한 느낌마저 들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는 계속 천둥소리 요란하게 비가 내렸다.

어제 밤에도 날이 흐려 별을 보지 못했는데, 테를지의 마지막 밤에도

그 유명한 별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다들 침울한 분위기다.

여행사 강대표가 준 양주 한 병을 마시는 것으로 다들 뿔뿔이

숙소로 흩어져 잠을 청했다.

그러다 밤 12시쯤 갑자기 난이님이 깨우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거짓말처럼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하였다.

마치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빛나는 별을 처다 보면서 하늘에 감사했다.

넷째 날, 울란바타르를 관광하는 날이다.

테를지 국립공원을 떠나 울란바타르로 가는 길은 초원이다.

끝없는 초원에 이리저리 이어지는 길은 이정표는 물론 방향도 없다.

말 달리는 초원에 딱히 개설된 길은 없다.

목초가 벗겨지면 길이 되고, 그 길이 패이면 그 옆에 새 길이 생긴다.

비슷해 보이는 초원과 구릉, 양 떼, 양과 섞인 염소 떼, 말 떼, 소 떼,

가끔 쌍봉낙타도 보인다.

제일 먼저 칭기즈칸의 동상을 관람하였다.

입장료를 내야 한다기에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거대한 동상을 바라보았다.

한때는 세계를 호령하던 칭기즈칸의 나라.

그들은 바람처럼 말을 달려 세상을 정복한 민족이었다.

칭기즈칸의 군대가 세계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날랜 말과

보급이 필요 없는 이동 때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은 말에 매단 주머니에 말린 소 한 마리를 넣어

다녔다고 한다.(소를 잡아 육포를 만들고, 이 육포를 말려 만든

가루를 가죽 주머니에 담아 말에 매달고 다니면서 식사대용으로 썼다.)

이동의 습관이 몸에 밴 칭기즈칸의 군대에게 정착의 삶에 길들여진

세상은 얼마나 손쉬운 상대였을까?

그러나 이제 그 용맹했던 칭기즈칸들은 황폐화된 사막의 모래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그곳에는 그저 말라가는 풀들 때문에 고통 받는 가난한 후예들만

살고 있을 뿐이다.

바람으로 역사에 등장하고, 바람으로 사라져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는 새삼 역사란 무엇인지, 삶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간등사원과 자이승 승전탑, 역사박물관 등이다.

유목민의 역사란 볼품이 없다.

그들은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 민족이기에 정작 남겨진 유물이 별로 없다.

게르라는 천막집에서 살면서, 그것도 수시로 옮겨가야 했던 그들에게

유형으로 남는 유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동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칭기즈칸의 후예들.

그들에게 우리네 같은 정착민이 갖는 물건이나 땅에 대한 애착은

그저 사막을 불어가는 한 줄기 바람처럼 덧없는 것일 뿐이리라.

칭기즈칸에 의해 지구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강대국 러시아와 중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나라의 명맥을

이어가기에도 벅찬 것 같은 초라한 위상을 갖고 있는 몽골.

어쨌든 간등사원과 역사박물관은 규모는 작지만

몽골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생각보다 알찬 내용으로 꾸며져 있어

관심 있게 볼 수 있었다.

저녁에는 몽골전통 공연인 ‘투밍에흐’를 관람하였다.

공연 가운데 몽골 전통의 악기 연주와 배에서 흘러나오는 몽골 전통음악

‘흐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공연 관람 후 단체로 마사지를 받고 나니 어느덧 밤 9시가 넘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해가 지는 탓에 한국 같으면 늦은 밤인 9시에

저녁 식사를 하면서, 어젯밤에 별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차량을 렌트해서 별을 보러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호텔에 체크인한 후 우리는 세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울란바타르 외곽으로 약 40분간 차를 타고 가서 나지막한 구릉에 도착하였다.

드디어 우리는 그토록 고대했던 몽골의 밤별을 볼 수 있었다.

지평선 끝에서부터 머리 위를 지나 온 하늘에 가득 찬 별들로

백야의 밤은 찬란했다.

하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은하수가 붓으로 선을 그은 것처럼 펼쳐져 있다.

아, 하늘에 저렇게 별이 많았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별들을 올려다 보며,

우리는 북두칠성, 카시오피아,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저마다 아는 별자리를 불러보며 한동안 초원에 누워 있었다.

어렸을 때 여름철 시골집 평상에 누우면 별빛이 쏟아질 듯

하늘 가득했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아, 이미 바보같이, 우리는,

은하수를 잃어 버렸다. 아니 잊었다.

몽골의 초원에서 새삼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 벅찬 감동을 새기면서 몽골의 마지막 밤이 깊어갔다.

나머지 말

몽골을 다녀온 다음날, 아는 후배가 나한테 물었다.

“몽골 다녀오셨다면서요? 거긴 뭐가 좋아요?”

“음...글쎄. 뭐라고 딱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냥 다 좋았다.

라고 얘기하면 이해할 수 있겠냐?”

어벌쩡한 내 대답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떨떠름한 반응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나 역시 몽골에 가보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대자연 속으로 떠나는 여행.

눈요기만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에겐 꽤나 심심할 수도 있는 곳.

그러나 빡빡한 일상으로 왜소해지고 지친 도시인들의 삶에

신선한 활력과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몽골은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강인하게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내 생활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상인지를 몽골여행에서 배운다.

그냥 자연에 모든 걸 맡겨버리는 그 완전한 시간이 좋아서

몽골에 간다.

텅 빈 충만감, 그것이 몽골에 가는 이유이다.



(작성일: 2015.07.24. 13:09)